파나마 운하 가뭄: 100년 된 수로가 기후변화 앞에 무릎 꿇다

세계 무역의 5%가 지나가는 길이 막혔다.

파나마 운하.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82km 인공 수로다. 이 운하 덕분에 배들은 남아메리카를 빙 돌아가는 15,000km 우회로를 생략할 수 있다. 시간으로 치면 2주는 아끼는 셈.

그런데 2023년부터 문제가 생겼다. 비가 안 왔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대형 화물선

물이 없는 운하의 딜레마

파나마 운하는 특이하게 생겼다.

일반 운하처럼 바다와 수평이 아니다. 중간에 호수가 있고, 배를 26미터 높이까지 들어올렸다가 다시 내린다.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이게 갑문식 운하다.

배 한 척이 통과할 때마다 2억 리터의 담수가 필요하다. 이 물은 가툰호에서 끌어온다. 문제는 이 호수가 비에만 의존한다는 거다.

2023년 말 일일 통행량은 22척으로 줄었다. 평소엔 36척인데. 거의 40% 감소다.

왜 줄였을까? 물이 부족해서다. 가툰 호수 수위가 2024년 4월 80.92피트까지 떨어졌다. 평년은 86피트 정도.

5피트 차이가 뭐 대수냐고? 배 입장에선 생사가 걸린 문제다. 수심이 얕으면 큰 배가 못 지나간다. 그래서 파나마 운하 당국은 선박 크기를 제한하고, 통과 숫자도 줄였다.

결과는? 2024년 회계연도 전체 통행량이 9,900척. 2023년보다 29% 급감했다.

트럼프가 관심 갖는 이유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갑자기 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의 40%가 미국에서 출발하거나 미국으로 향한다. 연간 무역 가치는 2,700억 달러. 미국 입장에선 생명줄이다.

파나마 운하 갑문 시스템의 화물선

트럼프는 중국이 운하를 통제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홍콩 기반 허치슨 포트 회사가 운하 양쪽 항구 2곳을 운영 중이다. 파나마 정부는 “그건 항구일 뿐, 운하는 우리가 관리한다”고 반박한다.

지정학적 싸움은 그렇다 치고,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멕시코가 짓는 철도

파나마 운하가 가뭄으로 헤매는 사이, 멕시코가 움직였다.

테우안테펙 지협 횡단 철도. 총 길이 188마일(약 300km). 태평양 쪽 항구에서 화물을 내려 기차로 싣고, 대서양 쪽에서 다시 배에 실으면 된다.

이동 시간은 하역 포함 15시간 정도. 파나마 운하는 8-10시간이지만, 최근엔 대기 시간 때문에 2주가 걸리기도 한다.

멕시코 철도는 파나마 운하의 5% 정도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5%도 작은 숫자가 아니다. 멕시코 정부는 60억 달러를 투자했고, 세계은행을 포함한 국제 기관에서 20억 달러가 추가로 들어왔다.

파나마 운하가 물 부족으로 고민하는 동안, 멕시코는 비가 필요 없는 대안을 만들고 있다.

회복의 조짐, 그러나

다행히 2024년 후반부터 상황이 나아졌다.

2024년 10월부터 2025년 1월까지 통행량이 4,042척.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일일 통행량도 27척으로 늘었다. 2025년까지 36척으로 정상화할 계획이다.

파나마 운하청은 한숨 돌렸다. 2025 회계연도 수입이 50억 달러를 넘을 거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LNG(액화천연가스) 선박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가뭄 때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길을 택했는데, 거기 그냥 머물렀다. 한 번 바꾼 항로는 쉽게 되돌리지 않는다.

기후변화 문제 사례의 교과서

파나마 운하 사태는 기후변화가 어떻게 경제를 때리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비가 조금 덜 왔을 뿐인데:

  • 세계 무역 5%가 타격
  • 연간 2,700억 달러 물류 혼란
  • 대체 항로 개발 가속화
  • 지정학적 긴장 고조

파나마 운하 당국은 16억 달러를 들여 리오 인도 댐 건설을 계획 중이다. 2027년 착공 예정. 물을 확보하려는 거다.

하지만 댐을 지어도 비가 안 오면 소용없다.

엘니뇨, 라니냐 같은 기후 패턴이 예전보다 극단적으로 바뀌고 있다. 2023년 엘니뇨 현상 때 가툰 호수 수위가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앞으로 또 올 수 있다.

100년 전 만들어진 운하는 기후가 예측 가능하다는 전제로 설계됐다. 이제 그 전제가 깨졌다.

대안은 있는가

세 가지 길이 있다.

1. 댐 짓고 버티기
파나마가 선택한 길. 물 저장 용량을 늘려서 가뭄을 견디자는 거다. 하지만 근본 해결은 아니다.

2. 항로 다변화
멕시코 철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 같은 대륙 루트 개발. 해상+철도 복합 운송은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아직 용량이 작다는 것.

3. 운하 현대화
기술 개발로 물 사용량을 줄이거나, 바닷물을 쓰는 새로운 방식 도입. 하지만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현실적으론 세 가지를 다 해야 한다.

우리가 배울 것

파나마 운하는 병목(bottleneck)이다. 교역로의 급소(choke point)다. 하나가 막히면 전체가 흔들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 수출입 물동량의 99.7%가 해상 운송이다. 파나마 운하가 막히면 북미 동부로 가는 길이 복잡해진다. 운송비가 오르고, 납기가 늦어진다.

기업들은 단일 루트에 의존하지 말고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물류 다변화에 투자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파나마 운하 가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목을 조를 수 있다.


데이터 출처:

  • 파나마 운하청(ACP) 2024-2025 회계연도 보고서
  • VOA 뉴스, 2025년 2월 7일
  • 트레드링스 블로그, 파나마 운하 현황 분석
  • Monthly Maritime Korea, 2025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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