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가격표: 비싸다고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처음 주식 투자를 시작할 때 가장 헷갈리는 게 하나 있다. 삼성전자가 7만원인데 비싼 건지 싼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옆에서 누군가 “요즘 주식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 덩달아 불안해진다.

그런데 정작 ‘비싸다’는 게 뭘 기준으로 하는 말인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가치라는 녀석의 정체

자산에는 가치(value)라는 게 있다. 하워드 막스 같은 투자 고수들은 이걸 ‘본질적 가치(intrinsic value)’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이 회사가 진짜로 얼마만큼의 값어치를 하는가”다.

근데 이 가치라는 건 주관적이다. 삼성전자를 보고 어떤 사람은 “반도체 최고, 미래가 밝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중국 추격 무섭다, 사이클 끝물”이라고 한다. AI도 정답을 못 찾는다.

그럼 가치는 어디서 나오나? 결국 돈을 벌어다주는 능력이다.

회사든 건물이든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가치는 반도체 팔아서 버는 돈, 스마트폰 팔아서 버는 돈, 앞으로 새로운 제품으로 벌 돈의 총합이다. 강남 빌딩의 가치는 임대료 수입이고, 제주도 펜션의 가치는 관광객들이 내는 숙박비다.

재미있는 건 금이나 비트코인 같은 것들이다. 이런 건 돈을 벌어다주지 않는다. 그냥 갖고 있다가 비싸게 팔기만 바라는 거다. 하워드 막스는 이런 자산은 “객관적으로 가치를 매기기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누군가 더 비싸게 사줄 거라는 기대만 있을 뿐.

가격은 투표 결과다

가치가 이론적이라면 가격(price)은 현실이다. 지금 당장 삼성전자 주식 하나를 사려면 7만원을 내야 한다. 이게 가격이다.

시카고 대학에서는 이런 걸 배운다고 한다. 자산의 적정 가격은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것”이라고. 복잡한 수식이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앞으로 벌 돈을 오늘 기준으로 계산해보는 거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격은 수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한다.

벤저민 그레이엄(워런 버핏의 스승)이 한 말이 있다. 시장은 매일 투표를 한다는 거다. 삼성전자를 보고 “좋다”는 사람들과 “별로다”는 사람들이 사고팔면서 가격이 결정된다.

오늘 삼성전자가 7만원이라면, 8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산다. 6만원 정도 값어치라고 보는 사람들은 팔아준다. 거래가 성사된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 가격이 움직인다.

가격과 가치의 줄다리기

투자에서 중요한 건 가격과 가치의 관계다. 이걸 ‘밸류에이션(valuation)’이라고 한다.

7만원짜리 삼성전자가 좋은 투자인지는 삼성전자가 실제로 얼마의 가치가 있느냐에 달렸다. 6만원 가치의 주식을 7만원에 사면 손해고, 8만원 가치를 7만원에 사면 이득이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실제로는 가치를 정확히 아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가치를 따라간다. 마치 자석처럼. 가격이 가치보다 높으면 언젠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낮으면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케인스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시장이 비합리적으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이 당신이 버틸 수 있는 기간보다 길다.” 가치 투자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너무 일찍 베팅했다가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금 미국 주식 시장은?

하워드 막스가 이번에 낸 메모의 핵심이다. 2025년 8월 기준으로 미국 주식시장을 진단해봤다는 거다.

S&P 500 지수의 예상 PER이 23배 정도다. 역사적 평균보다 확실히 높다. JP모건 자료를 보면, 1987년부터 2014년까지 PER 23배에서 샀을 때 이후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플러스마이너스 2% 사이였다고 한다. 나쁘다.

올해 들어서는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가 4월에 대대적인 관세 정책을 발표했다. 투자자들이 깜짝 놀라서 주식을 팔았다. S&P 500이 15% 떨어졌다.

그런데 4월 8일 저점 이후 어제까지 29% 올랐다.

왜? 관세가 처음 발표만큼 심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TACO’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Trump Always Chickens Out”의 줄임말이다. 트럼프는 항상 물러선다는 뜻이다.

지금이 위험한 이유들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하다:

  • S&P 500이 매출의 3.3배에 거래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7월 25일) 역대 최고치다.
  • 바클레이스의 ‘주식 도취 지표’가 평상시의 2배 수준이다. 버블 구간이다.
  • 워런 버핏이 좋아하는 지표(미국 주식 시총 대비 GDP 비율)도 역대 최고다.
  • 10년 국채 수익률 대비 S&P 500 배당수익률을 보면 주식이 역사적으로 비싸다.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매그니피센트 7’ 얘기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테슬라. 이 7개 회사가 S&P 500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2023-24년 S&P 500 수익률 58%의 절반 이상이 이 7개 종목에서 나왔다.

이 회사들 PER이 평균 33배다. 높긴 하지만 하워드 막스는 “납득할 만하다”고 본다. 워낙 좋은 회사들이니까.

문제는 나머지 493개 회사다. 이들의 평균 PER이 22배다. S&P 500 역사적 평균이 15배 중반인데 22배라는 건 꽤 비싸다는 뜻이다.

왜 계속 오르고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관세, 인플레이션 우려, 미국의 국제적 위상 하락 등 부정적 요소가 많은데 주가는 계속 오른다. 왜?

하워드 막스의 분석:

첫째, 투자자들은 본질적으로 낙관적이다. 남한테 돈을 맡기려면 낙관주의자여야 한다. 특히 주식 투자자들은 더하다.

둘째, 16년 넘게 큰 하락장이 없었다. 2009년 이후 계속 상승장이다. 35세 이하 투자자들은 진짜 베어마켓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주가는 떨어져도 다시 오른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셋째, 여전히 미국이 최고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래도 미국이 제일 낫다고 본다.

넷째, AI 혁명에 대한 기대다. 새로운 기술이 모든 걸 바꿀 거라는 믿음.

“이번엔 다르다” 논리

상승장마다 나오는 변명이 있다. “이번엔 다르다(It’s different this time).”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S&P 500 구성 기업들이 과거와 달리 (a) 더 빠르게 성장하고 (b) 경기 변동에 덜 민감하며 (c) 성장에 필요한 자본이 적고 (d) 경쟁 우위가 더 견고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맞는 말이다. 존 템플턴이 했다는 말이 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20%는 맞다고. 지금은 아마 20%보다 높을 거다.

문제는 어떤 회사가 진짜 다른지 구분하는 거다. 대부분의 “새로운 혁신” 때마다 투자자들은 너무 많은 회사를, 그것도 종종 잘못된 회사를 성공할 거라고 본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워드 막스는 ‘INVESTC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국방부 경계태세(DEFCON)의 투자 버전이다:

INVESTCON 6: 매수 중단
INVESTCON 5: 공격적 포지션 줄이고 방어적 포지션 늘리기
INVESTCON 4: 공격적 포지션 완전 정리
INVESTCON 3: 방어적 포지션도 줄이기
INVESTCON 2: 모든 포지션 정리
INVESTCON 1: 공매도

그는 지금이 INVESTCON 5 단계라고 본다. 조금 방어적으로 가라는 얘기다.

크레딧(회사채) 투자를 추천한다. 수익률은 주식만큼 좋지 않지만, 원리금 상환 약속이 있어서 안전하다. 절대 수익률로는 괜찮고, 역사적 주식 수익률과 비교해도 경쟁력 있다.

결국 타이밍의 문제

가격이 가치보다 높다고 해서 곧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버블은 터지기 전까지 계속 커진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인용하며 하워드 막스는 끝맺는다. “자신의 입장만 아는 사람은 그 입장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는 것이다.”

반대 논리도 알아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상승장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AI 혁명이 진짜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확실한 건 하나다. 과대평가를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언제 조정이 올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확신하지 말고, 조금씩 방어적으로 포지션을 가져가는 게 현명하다는 거다. 시장이 계속 오른다 해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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